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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收堂연혁 (1770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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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덕명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5-04-0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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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收堂연혁 (1770년~현재)

묘역(2016년):
경북 성주군 벽진면 외기리 959 번지
경수당(1826년):
경북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756-1 번지

 敬收堂연혁
우리 碧珍李氏는 경종수족(敬宗收族)하여 그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이를 널리 선양하고자 諱 총언 시조공의 유허인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756-1 번지에 宗堂인 경수당(敬收堂)을 창건하고.시조공의 얼과 정신을 되세기고 은덕을 기르기 위해서 매년 時享을 드리고 있다.


1. 원래 시조공의 묘소가 성주 서쪽 명암방 수촌에 있었다고 하나 임진병란 후 실전함에 따라 후손들이 이 묘소를 찾으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 서기 1770년 영조 46년인 상수촌 매적산 동쪽 기슭에 단을 설치하고.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제사를 드려오다가
 

3. 서기1826년 순조 26년인 단소와 조금 떨어진 지금의 자리에 제실을 짓고 당호를 경수당(敬收堂)이라 하였다.
 

4. 서기 1864년 고종 원년인 갑자에 본당에 보소를 설치하고 다음해 갑자보 (甲子譜) 17권을 완간 배포 하였는데, 그 여력으로 시조공의 유허비와 표갈을 세우고. 시조공의 29세손 승지공 일하정 학준공께서 경수당기를 찬술하고. 경수당이 벽진이씨의 성지임을 대내외에 표방 하였다.
 

5. 서기 1865년에는 시조공의 29세손 직장공 화서 이항로선생께서 벽진장군 이총언 사실기를 찬술하였다.
 

6. 서기 1878년 고종 15년에 매적산 동쪽에 있던 제단을 영봉산 남쪽 기슭 이천 부근으로 옮겼다가, 서기 1881년 다시 경수당 경내 유허비 옆으로 옮기면서 시향 일자를 음력 10월 3일로 변경 결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7. 서기 1886년 고종 23년에 성주 목사로 부임한 시조공 31세손 참판공 용화(龍和) 님께서 경수당의 부지를 수습하여 담장과 문간채를 짓고 담장 밖 서쪽에 소나무를 심어 조경하여 경수당의 면모를 일신 하였으며, 다음해 이 토지 의 완문(完文 : 토지의 소유 권리를 명시한 관문서로 지금의 등기권리증)을 공포함에 따라 완전 경수당의 부지 로 확정하고 차차 매입 확장하여 지금은 대략 3000여평에 이르고 있다.
 

8. 서기 1917년 시향 때 제사(齋舍) 중창을 발의하고, 다음해 10월 이를 완공하여 당호 경수당(敬收堂)을 편액 하였다.
 

9. 서기 1930년 단소에서 드리던 시조의 시향을 풍설도 피하고 위의를 갖추기 위하여 재실에서 드리기로 합의하면서, 2세 휘(諱) 영(泳) 지경산부사 부군. 3세 휘(諱) 방회(芳淮) 추밀사 부군. 4세 휘(諱) 경석(慶錫) 평장사 부군. 5세 휘(諱) 증(曾)상호군 부군. 6세 장손 휘(諱) 실(實) 금자광록대부 부군 역시 6세 차손 휘(諱) 보(寶) 상장군 부군. 7세 휘(諱) 방화(芳華) 광록대부 부군. 8세 휘(諱) 은(殷)은청광록대부 부군. 9세 장손 휘(諱) 당규(唐揆) 태자담사 부군. 9세 차손 휘(諱) 당개(唐蓋) 금자광록대부 문화시중(金紫光祿大夫 門下侍中). 10세 휘(諱) 옹(癰) 은청광록대부 지추밀원사 부군을 모시기로했다.
 

10. 서기 1962년에 경수당 수축 및 유허비 이건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다음해 경수당수축 숙사신축 담장보축 공사를 완공하고,『고려삼국대광개국원훈 벽진장군이충언유어비(高麗三重大匡開國元勳 碧珍將軍李忩言遺墟碑) 라고 제액한 유허비를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11. 서기 1966년 위의 유허비를 근엄하게 보존하고자 비각건립위원회를 결성하여 다음해 이를 완공하고 그 전면 비도에 양쪽으로 사자석(獅子石) 장군석(將軍石) 석등(石燈)을 각 한 쌍 식 의물로 도열 설치하였다.
 

12. 서기 1974년 경수당 서쪽 길 건너 솔밭에 벽진장군 사적비를 건립하였는데, 비문은 화서 이항로 선생께서 찬술한 벽진장군 사실기이고, 진성인(眞城人) 이가원(李家源) 박사가 글씨를 섰다.
 

13. 서기 1977년 在日 일가들의 헌성으로 정문(正門)을 건립하였는데, 서기 1989년 경수당 정화 사업에 따라삼문을 수축하면서 이 문은 지금의 서문으로 이건하였다.
 

14.서기 1986년 사우(祀宇) 건립 추진위원회(建立推進委員會)를 발족하고 우선 비현사(丕顯祀)와 세덕사(世德祀) 그리고 내삼문(內三門)인 숙정문(肅靜門) 외삼문(外三門)인 숭상문(崇尙門)을 착수하고, 서기 1989에 이를 완공하여 비현사에서는 시조공를, 세덕사에서는 위 2세에서 10세 까지 10위와 여기에 더하여 9세 차손(次孫)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 금릉백(金陵伯) 부군(府君)을 추향하여 모두 11위를 향사함에 따라 비현사와 함께 경수당에서 모두 12위를 봉향하고 있다.
이에 공사를 이어 동재인 양정제(養正齋) 서재인 근성제(勤誠齋)를 완공하고, 함께 제수(祭需)를 변공(辦供)하는 전사청(典祀廳)을 지었는데 이는 여은공파 종중이 그 비용을 부담하였으며, 부지 1114평을 매입하여 경내를 확장하였다.
 

15.서기 1992년 임신 음력 3월 3일 위에서 말한 12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10월 3일은 12위 제위에게 추향을 드리고, 3월 두째일요일에는 비현사(시조공) 세덕사에서 춘향을 드린다.
 

16. 서기 2008년에 시조공묘가 입진명화(1592)로 410여년간 실전하여 왔는데 벽리 종인의 종론을 모아서
경수당 서편 벽진장군 사실기 사적비 옆에 백진장군말 무험이라고 전해온 전설의 무덤을 문현의 고증과 고고학계의 탐사과정에서 신라말 고려초 토기와편 19점과 벽진장군 4자의 명문전이 발견되어 벽진장군 묘임을 확증하게 되었다..
 

17. 서기 2013년 6월에 자손의 성금으로 성주군 벽진면 외기리 959 번지에 시조공 묘역을 복원 하고 매년 추향제 향사를 지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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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 委員長  儒珍 善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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