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珍李氏 族譜 發刊이력 (1652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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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珍李氏 족보 발간이력 (1652년~현재)
벽진이씨의 최초의 족보인 1652년 임진보가 편찬된후에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6번의 大同譜를 발간했다.
2025년에는 인터넷으로 활용하는 전자족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이 내용을 이력별로 살펴보면,
역대 보(歷代譜)
임진보(壬辰譜) : 1652년
경인보(庚寅譜) : 1710년
경인보(庚寅譜) : 1725년
경인보(庚寅譜) : 1726년
병술보(丙戌譜) : 1826년
갑자보(甲子譜) : 1864년
임자보(壬子譜) : 1912년 -
을미보(乙未譜) : 1955년 -
신축보(辛丑譜) : 1961년 -
병자보(丙子譜) : 1996년 -
1.효종(孝宗) 임진보(壬辰譜)
1652년(효종3)인 임진년에 간행한 우리 문중 최초의 한문본 창간족보이다. 이 대동보는 1635년(인조13)에 충숙공 상길(尙吉)선조님께서 완산 부윤으로 계실때 단자를 수집하여 족보를 편집하기 시작하였으나 직책이 바뀌고, 1637년 (인조15)에 병자호란으로 순절하심에 따라 중단되었다.
그로부터 10년후 진주목사로 부임한 그의 종제 감사공 휘 상일께서 이를 완성하기 위하여 준비하든 중에 영남지방에 계파가 다른 일가가 많은 사실을 알고, 함께 단자를 모으고 비용을 부담하면서 효종 임진년에, 성주벽진이씨세보 라는 판각 목판본의 단행본 족보를 간행하였다.
특징은 2남인 대장군공파가 먼저 수록되고, 장남인 산화공파가 다음으로 수록되어 있다. 원본은 유일본으로 전승되고 있었는데, 1983년 증간위원회를 결성하여 간행한 100질의 한정, 영인본이 효종 임진 벽진이씨 세보 라는 이름으로 전하고 있다.
2.숙종(肅宗) 경인보(庚寅譜)
숙종 36년 경인(庚寅) 1710년에 왕자사박(王子師傅)효헌공(孝獻公) 世근선조님께서 주관하여 노원 하계 충숙공 영하에 보소를 설치하고 판각한 5 권인데, 이 족보는 판각을 서두르는 바람에 족보의 범례서문 발문을 함께 인각하지 못했고 또 오자가 많아 본격적인 간행을 보류하여 하계리 보소에 그냥 두었던 것을 지례현감 (知禮縣監)으로 부임한 효헌공의 종제 세윤(世玧)선조님께서 그 판각을 김천 직지사로 옮기고, 그의 록봉(祿俸)을 출연하여 1725년 영조(英祖) 을사(乙巳)에 교정한 족보를 을사교정(乙巳攷正) 그 다음해인 1726년 병오(丙午)에 교정한 족보를 병오교정(丙午攷正)이라하여 보소를 설치한 후 16년 만에 완성을 보게 되었는데, 이 판각은 직지사의 화제로 모두 소실되었다.
3.순조(純祖) 병술보(丙戌譜)
순조 26년인 1826년 병술 금산 경렴서원 지금의 하로서원(賀老書院)에 보소를 설치하여 활자로 간행한11권의 대동보다.
4.고종(高宗) 갑자보(甲子譜)
철종 12년인 1861년에 발의하여 1863년 경수당에 보소를 설치하고 그 다음해인 서기 1864년갑자甲子에 본격적으로 보사를 추진하여 그 다음해인 을축년에 간행 완료한 17권의 대동보를 말하는데, 이 족보에서부터 6세(世) 차손(次孫) 보(寶)선조님의 후예가 입보를 시작하여 후에 문정공파(文靖公派)를
이루게 되었다.
5.임자보(壬子譜)
1911년 신해(辛亥)에 성주 명곡 문곡정사에 보청을 개설하여 그 다음해인 임자(壬子)에 본격적인 보사를추진하여 간행한 18권의 대동보 인데, 편집 과정에 생긴 견해차로 평정공파(平靖公派)가 중도 탈퇴한 험을남겼지만 대동보로 공인하여 다음 대동보인 신축보에 그 서문을 올렸다.
6.신축보(辛丑譜)
1961년 서울 화수회 석상에서 발의하여 1963년 10월에 완성한 甲 乙 2 권과 부록으로 사진첩을 덧붙였는데, 새로운 많은 일가들이 발굴되어 수록 되었고, 금릉공파 또한 이 족보에서 부터 입보하게 되었다.
7.병자보(丙子譜)
1996년 병자丙子 2월 25일 종회에서 대동보 발간을 결의하고, 1998년 간행 배포한 대동보인데,이 족보에 는 96개 지파의 남 여 모두 84291인의 생존 인원이 수록되어 있다.
위에서 열거한 7간(刊)의 대동보 이외 각 중 소 계파 단위로 발간한 파보는 많이 있다.
8.갑진대동보 및 인터넷족보
2024년부터 대종회 결의로 갑진대동보 및 인터넷 전자족보를 구축하다.
그동안 대동보 족보는 서책으로 발간되어 시간적이나 공간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아서 족보의 활용도가 낮아 아쉬움이 만았다. 또한 한자로 편찬이이 되어 있어서 젊은 후손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한글 한문병용의 서책과 인터켓 전자족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서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열람할 수 있고. 한자와 족보를 잘 모르는 젊은 후손들 에게도 효(孝)와 뿌리교육, 인성교육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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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 委員長 儒珍 善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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