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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 이상길초상[ 忠肅 李尙吉肖像] (1556∼1637)..보물 7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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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덕명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5-04-0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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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 이상길초상[ 忠肅 李尙吉肖像] (1556∼1637)..보물 792호
조선 중기의 문신 이상길(李尙吉)의 초상.  
 지정번호 : 보물 792호
지정연도 : 1984년 8월 2일
소장 : 이정봉
소재지 : 전북 남원시 덕과면 사곡리 30 (국립전주박물관 보관)
시대 : 조선 인조
수량 : 1폭 (인조때의 대화가 김명국 의 그림)

이상길(李尙吉)(1556∼1637)은 조선의 문신(文臣)으로 자(字)는 사우(士祐), 호(號)는 동천(東川), 본관(本貫)은 벽진(碧珍)이다. 벼슬은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이르렀으며, 인조(仁祖), 14년(1636)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묘사(廟社)를 따라 강화(江華)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청군(淸軍)이 강화에 육박하자 자결(自決)했다.
이 영정은 낮은 사모(紗帽)에 담홍색(淡紅色) 단령(團領)을 입고 공수자세(拱手姿勢)를 취하고 의자에 앉은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상(全身像)이다. 상용형식면에서 단령의 양쪽 트임새로 살짝 내비치는 과(과)와 첩리(帖裏), 양쪽 어깨의 경사진 각도를 달리함으로써 앉음새를 매우 안정되게 나타내어 조선 중기 초상화(肖像畵)의 전형적인 특색을 보여준다. 그러나 안면(顔面)의 세부(細部) 묘사에 있어서는 이미 골상학(骨相學)에서 말하는 삼양(三陽), 삼음(三陰), 누당(淚堂), 와잠(臥蠶)을 경계로하여 선염기(渲染氣)를 짙게 안배함으로써 안면의 고심세(高深勢)를 나타내려는 도식화된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 있어, 이상길 재세시(在世時)의 묘법보다는 좀 더 후기의 초상화법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영정은 원본을 충실히 그려낸 이모본(移模本)으로서, 안면처리에만 이모시(移模時)의 시대색(時代色)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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